2010년 2월 25일 목요일

암癌을 이긴 의사들, 절망은 없다.(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

생/로/병/사/의 비밀
 
       
을 이긴 의사들, 절망은 없다
 
 
 
■ 방송 일시 : 2009년 05월 28일 () KBS 1TV 22:00~22:50
■ 담당 프로듀서 : 홍기호 PD
■ 작가 : 이혜라, 제선영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병, ‘암’
평균수명까지 살 경우 남자의 1/3, 여자의 1/5이 암을 진단받는다.
의료의 최전선에서 인술을 펼치고 있는 의사들 역시
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희대 / 유계준 / 김선규 / 오구라 쓰네코!
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는 4명의 의사들!
그들은 어떻게 암을 극복했을까.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암을 이겨낸 의사들이 말하는
암 극복의 열쇠를 공개한다.
 
 
 
 
내 삶의 다른 이름 - 기적(奇蹟)
 
의학적으로는 0기, 1기, 2기, 3기, 4기 해서 끝부분이지만
4기가 꼭 말기는 아닙니다
4기라도 얼마든지 희망을 가지고 자기가 치료하면 이기고 극복하고
다시 소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유방암 집도의로 명성이 자자한 이희대 교수. 그의 연구실에는 다양한 숫자들과 의학 용어로 가득한 화이트보드가 있다. 2003년 무렵부터 자신의 투병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해 온 칠판 -. 그는 암 전문의인 동시에, 암과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는 암환자다.
대장암 4기, 하지만 그는 자신을 말기 암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환자에게 지팡이를 짚고 다가가고, 의자에 앉아 수술을 집도하며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에 열중했다. 과로가 피로를 부르고, 암을 키웠다. 무려 11번의 재발과 5번의 수술, 2번의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6차례...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상황, 하지만 이희대 교수는 달랐다. 그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었고, 또 희망이 있었다.
대장에서 간으로, 골반뼈로 쉼없이 이어진 전이에 그의 CEA(암표지자) 수치는 172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2008년부터는 1 이하로 떨어져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더 이상의 재발이나 전이도 없는 상황. 환자들에게 그는 존경할 수 있는 의사이고, 마음을 나누는 동료이며, 그들이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이다.
 
 
암, 그리고 22년
          - 나는 살아 있고, 그래서 나는 춤춘다
 
환자를 만나는 것은 삶의 가장 큰 보람이에요
얼굴은 미소를 띄고 몸의 컨디션도 좋아져요
 
요추, 경추 등이 모두 암으로 뼈가 녹았기 때문에 춤은 위험한 면이 있죠
하지만 몸을 움직여 온 몸의 혈액이 순환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고
또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일본의 한 이비인후과병원. 밝은 미소로 환자를 맞이하는 여의사가 있다.
오구라 쓰네코 - 일본에서는 암과 공존하며 일과 취미를 지키는 의사로 유명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된 그녀. 결혼 후 귀여운 두 아이의 엄마로, 유능한 의사로의 삶을 꾸려나가던 중,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바로 유방암이었다. 그로부터 22년-, 그녀는 아직도 몸 속에 암을 안은 채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유방에서 흉골로 전이, 그리고 또 전이. 완치 판정은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삶은 활력이 넘친다. 항암제로 인한 통증은 계속 되고 있고, 춤을 출 때면 보호대를 착용해야 하지만 그녀는 진료가 끝나는 오후면 댄스 스튜디오로 달려간다. 음악에 맞춰서 추는 춤에서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2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진료실과 땀 냄새가 가득한 댄스스튜디오에서 그녀의 삶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다.
 
 
▶ 일흔 둘, 그리고
          - 적이 아닌이 되다
 
           암이 생기더라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 병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올해 일흔 넷의 유계준 박사. 세브란스병원 정신과에서 정년퇴임한 후 후배의 병원에서 진료를 계속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보살피는 그에게서 암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2년 전 일흔 둘의 나이에 대장암 3기를 진단받았다. 수술 후, 고령의 나이에 항암치료가 큰 고통이 될 거라 모두가 걱정했다. 하지만 항암치료 기간에도 그는 병원 진료를 계속했다. 항암제의 고통을 더는 보조치료제가 있었고, 항암치료 기간 동안 다양한 단백질 음식으로 약해진 몸을 지켰기 때문이다.
 
암 치료 기술은 넓고 깊게 발전하고 있다. 구토억제제와 더불어 백혈구생성촉진제가 항암치료의 고통을 덜어주고, 2박 3일 이상 입원해야했던 항암치료 기간을 줄여주는 다양한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이라면 포기해야했던 상태의 암을 생존의 길로 이끄는 최신 치료법도 암 치료를 돕고 있다. 또한 암환자들의 부족한 영양과 입맛을 채워주기 위한 전용 메뉴도 개발되어 환자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암은 더 이상 죽음의 대명사가 아니라,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는 하나의 병에 지나지 않는다.
 
 
C A N C E R(암은)
            - CAN(이길 수 있다)
                 CHANGE(당신의 삶을 바꾸고)
                 REBIRTH(다시 태어난다면)
 
   지나온 생활 전반, 과거의 생활의 총체적인 결과가 암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반성을 한 후에 180도로 자기를 바꾸는 기회로 삼으면
암에 걸리기 전보다 암에 걸린 후가 굉장히
축복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일산에서 가정의학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선규 원장. 그의 진료실과 인터넷 홈페이지는 그에게 조언과 도움을 구하는 암환자들의 목소리로 늘 분주하다. 암 진단 전, 그의 삶은 ‘술과 장미의 나날’이었다. 일주일에 5번 이상 계속된 술자리, 퇴근 후 그의 손에는 늘 술잔이 들려있었다. 평소 건강을 자신했기에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는 그. 하지만, 1998년 직장암 3기 진단을 받았고 직장을 20cm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는 항암치료 대신 산으로 들어갔다.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서 눈을 뜨고 해가 지면 잠을 잤다. 그러면서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식습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순이 올라오는 봄이면 싹을 캐어 나물을 무치고, 잘 발효된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여서 먹었다. 그렇게 보낸 3년 후. 그의 몸은 전이나 재발이 없이 건강을 되찾았다.
암 진단 후 11년 - . 그는 자신의 암이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암 투병 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또 숨 쉴 틈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것. 그는 이제 아내와 함께 시장을 찾아 채소를 고르고, 화학주 대신 복분자주로 한 잔 건배를 한다. 일주일에 5번, 술잔 대신 테니스채를 잡고 운동을 시작했다. 암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바꾸었고 그래서 새로운 삶을 선물받았다.
 
 
 
1. 자기 암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2. 치료결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3. 적당한 사회생활을 지속한다.
4. 암을 유발했던 환경을 바꾼다.
5,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암을 진단받고, 암을 이겨내기도 하고, 암으로 죽기도 한다. 그리고 암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이 암환자들을 돕고 있다. 하지만 <생/로/병/사/의 비밀>이 만난 의사들은 가장 기본적인 이 다섯 가지 열쇠를 손에서 놓지 말라고 충고한다.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더 굳건한 마음으로 이겨낸 시간들. 특별하고 생생한 의사들의 암 투병기를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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