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6일 화요일

신 전원일기-죽어도 도미, 썩어도 준치/최송희

이번 눈이 내리기 전 남편과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운동도 하고 떨어진 잣도 주울까 해서입니다.

잣나무에는 주인들이 있어서 가을이 되면 나무에 올라가 잣을 따지만 그래도 남은 잣이 떨어진 것들이 꽤 있어서 주울 만 합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산에서 잣을 몇 자루 주워서 누구는 삼백만원을 벌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줍고도 또 굴러다니는 잣이 있기 마련이어서 우리는 이삭줍기를 하러 간 셈입니다.
잣 방울의 색이 낙엽과 워낙 비슷해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래도 보물찾기 하듯 열심히 찾다보면 큼직한 잣 방울이 눈에 들어와 주울 때의 기쁨이 쏠쏠합니다.

그날은 꽤 추운 날이었는데도 산에 올라가 이리저리 잣 찾기를 하다보니 오히려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이 돼 기분도 좋았습니다.
잣을 찾아다니면서 이런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평생 뽀대 나는 일만 하던 사람들은 망한 후에도 뽀대 나지 않는 일은 전혀 못하고 안합니다.
그래서 멀쩡한 몸을 두고도 그저 소파에서 리모컨만 굴리고 누워있으면서 잘 나가던 시절의 영광만 아쉬워합니다.
일을 하려고만 들면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 겸손한 일거리가 없지 않은데도 그런 천한 일은 당연히 본인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 품위 있는(?) 백수노릇을 계속합니다.

쓰던 가락이 있는지라 씀씀이는 줄이기 어렵고 밖에 나가 품위유지는 하고 싶고 정작 수입은 없으니 가계는 점점 적자가 쌓입니다.      
그럼에도 죽어도 도미, 썩어도 준치를 계속 하려드는 이런 남편들 때문에 부인들의 속이 곪아 터집니다.

옛날에는 사천 평 저택에 살던 부자였는데 바람피우고 망하다 이혼을 당하고 힘들게 살던 끝에 마침내 자존심과 품위를 내려놓고 택시운전을 하는 지체가 있습니다. 그분을 부인이 다시 받아준 것은 말씀 때문이지만 옛 영광 다 내려놓고 운전을 하시는 겸손함도 많은 점수를 받은 듯 합니다.

미국 명문 대학을 나와서 큰 사업을 하던 분도 망한 후 오랜 세월 소파에서 지내시다가 우리들 교회에 오신 후 경비로 취직하셔서 부인이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풍년의 시절에 흉년을 예비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낮은 자리에 내려가서 뽀대나지 않는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이런 남편, 이런 아버지를 진정 존경합니다.
소파에서 구르는 남편이 있다면 잣이라도 주워오라고 가평으로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출처: 우리들교회 자유나눔 home.woori.cc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