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5일 월요일

신 전원일기- 피덩어리 사랑/최송희

남편이 하다 만 농사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그중에서도 급한 일만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고추는 심었는데 고춧대를 세우다 말았기에 모자란 고춧대를 사서 모종을 세우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는데 마침 군에서 제대한 조카가 생각나서 도움을 요청하니 기꺼이 왔습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집사님 부부가 돕겠다고 오셔서 함께 대를 꽂고 끈을 연결해서 고추모종을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도우미가 많으니 어찌나 힘이 되던지 일꾼을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남편은 안에서도 심어놓은 작물들 걱정을 할텐데 지체들의 도움으로 잘하고 있다고 안심시켜주고 싶었습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우체부가 왔습니다.

결혼한 후 처음 받아보는 남편의 편집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면회를 가지만 초췌한 얼굴을 보며 울지 않으려고 괜히 밥 잘 먹냐 약 잘 먹냐 같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7분은 금방 가버립니다.

남편도 자기 마음을 하나도 전하지 못한 게 아쉬워 편지를 쓴 모양입니다.

중매로 결혼해서 그저 무덤덤이 살았는데 다 늙은 나이에 사랑하는 당신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시작부터 콧등을 찡하게 만들더니 구구절절 자기 죄를 보는 내용이 시야를 뿌옇게 흐리게 만들어놓고 맙니다.

누가 사랑을 낭만이라 했습니까?

바람이 나서 이혼해달라고 요구하는 남편이 앓아누운 곁에서 간병하느라 밤을 새는 것이 사랑입니다.
소주만 마시며 뒹구는 남편이 잉태시킨 네 번째 아이를 낳기로 결단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죽을병에 걸린 아내에게 얼마 안 남았으니 예수 믿어야 한다고 말해주는게 사랑입니다.

집안을 거덜 낸 남편에게 화를 내는 대신 교회에 가자고 하는게 사랑입니다.

알콜 중독 남편을 울며 병원에 넣는 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달콤한 낭만이 아니라 피덩어리의 십자가입니다.

밉고, 싫고, 이혼하고 싶고, 절망할 때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싸서 넘어가게 해주시는 피덩어리 입니다.

저도 남편을 미워하기도 했고 꼴 보기 싫어서 눈 흘기기도 했으며 성질이 지랄 같다고 흉도 보고 찌질이라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늙은 찌질이 남편이 저를 울립니다.

수의 한 벌과 담요 한 장에 의지해 너무나 남루해진 인생의 살아온 날을 회개로 되씹는 그는 저의 피덩어리 남편입니다.
*출처: 우리들교회 자유나눔 home.woor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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