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5일 월요일

신 전원일기- 느디님 언니들/최송희

며칠 전 남편의 졸업식에 갔습니다.


농업대학 졸업식에 어울리는 약간 촌스러운 꽃다발을 사서 갔는데 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습니다.

갑자기 낯선 남자가 오더니 반가운 얼굴로 제게 손을 내밀어 저를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알고보니 내년 지자제 선거에 나갈 군의원 이었습니다.

이런 남자들이 여럿 다가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대하듯 인사 하고 악수를 하는 일이 한참 계속되다가 졸업식이 시작됐습니다.

의원님들은 내빈석에 앉아서 계속 여러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미스 코리아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졸업하는 농부들은 누군가 상을 받을 때마다 떠나가라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고 남편도 개근상을 비롯한 몇가지 상을 받으며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갔는데도 식장의 열기는 식지않아 아무도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박수 치는 손들에 힘이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특별석에 앉은 높으신 분들은 박수는 계속 치면서도 자신들의 얼굴이 점점 무표정해가는 것을 모르고 있는듯 했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반끼리 회식이 있어서 농부의 부인들과 함께 식당에 갔는데 그분들은 처음 만났는데도 대번 농사 이야기를 하며 친근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농촌에서 사신 그분들은 거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농사일과 살림을 하느라고 쉴새 없이 고달픈 삶을 살아온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삶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눈만 뜨면 일하는 것도 당연하고 시부모 모시는 일도 당연하며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파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며 불평이 없는 그분들은 느디님 같았습니다.

올해도 벼농사가 잘돼 자식들에게 쌀 부쳐준 이야기며 고추나 깨농사가 올해는 어떻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푸근한 얼굴로 풀어놓는 소박한 얼굴에는 웃음이 넘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는 느디님 들에게 무슨 우울증이 있겠습니까.

한가지만 힘들어도 불평이 나오며 금새 수색이 있는 얼굴을 하고 눈물 질질 짜낸 저의 삶은 모든걸 당연히 여기지 못한 억울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느디님 언니들은 촌스럽고 늙어보였지만 당연히의 인생을 살아온 분들 답게 겸손하고 편안했습니다. 성벽을 쌓던 느디님들도 아마 이런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시골에서도 내빈석에 앉아 지위와 특권에만 관심이 있고 농부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는 정말 놀고싶지 않고 늘 느디님 언니들과 놀고 싶습니다.

*출처: 우리들교회 사이트 자유나눔에서 home.woor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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