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5일 월요일

신 전원일기- 뽀대나지 않는 인생/최송희

벼나 채소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이미 할 일이 다 끝났지만 저희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튤립 구근도 마저 심어야하고 불루베리 밭에도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루베리 두둑에 잣 껍데기를 수북히 덮어주는 일을 하는데 십센티쯤 껍질을 덮어주면 나무의 수분을 유지하는 역할도 할뿐 아니라 풀이 많이 나는 것도 막아주고 나무 뿌리가 옆으로 잘 자라게 도와주는 일도 합니다.

다른 농장에서는 왕겨 같은 것으로 덮어주는데 우리 마을 근처에 잣 공장이 있기 때문에 잣의 가장 껍데기 부분을 벗겨낸 잉여물을 얻어서 가져왔습니다. 공장에서는 이걸 별로 쓸 곳이 없기에 흔쾌히 가져가라고 해서 몇 차나 실어 날랐습니다.

향긋한 잣 향기가 나는 껍질을 두둑에 수북하게 덮어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구나 이 좋은 걸 공짜로 얻어온 것이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잣 공장에서는 가평 특산물인 잣을 따서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포장해서 파는데 사먹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가격이 비쌉니다. 딱딱한 속껍질은 화장품의 원료로 판다고 합니다. 불을 때는 데나 쓰이던 겉껍질도 저희가 가져오니 불루베리 밭에 훌륭한 덮개로 쓰이게 됐습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남편의 아이디어입니다.

사람들은 다들 잣 알맹이 같은 인생이 되고 싶어 합니다.
뽀대 나고 비싼 인생이 되어야 가치가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잣 껍데기가 훨씬 유용합니다. 잣 알맹이가 몇 가마니 있다고 한들 그걸 불루베리 밭에 뿌리겠습니까.

알맹이나 속껍질이 쓰이는 데가 따로 있고 겉껍질이 쓰이는 데가 따로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인생이란 없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쓸모없는 놈이라는 욕을 먹었던 한 청년이 그 말 때문에 상처가 되어서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청년은 유명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쓸모 있는 인생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마음만 조급해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잣 알맹이가 되지 못하는 자신이 별 쓸모없는 인간이라 여기고 열등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왜 일류대학에 못가고 나는 왜 성공을 못하고 나는 왜 얼굴이 못생겼고 우리 집은 왜 돈도 빽도 없나 해가면서 자신을 쓸모없는 잣 껍데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농장에서 잣 껍데기가 불루베리를 잘 키워주는 역할을 하듯이 사람에게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다 있습니다.

그저 뽀대가 나지 않을 뿐이지 다 하나님이 주신 역할인걸 알면 주눅들지 않습니다.

*출처: 우리들교회 자유나눔 home.woor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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