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5일 월요일

신 전원일기- 나 합격했어!/최송희

비닐하우스에 케일이니 겨자, 청경채 등 쌈 채소 모종을 심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 포터에 씨를 뿌린 후 싹이 올라와 조금 자란 모종을 하우스 안에 줄을 지어 심는 일입니다. 손가락보다 작은 모종 수 천 개를 심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심다보면 무릎이 아파 애고고 소리가 나오고 심어도 심어도 하우스의 끝자락이 아득하게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심다 보면 그것이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저기까지만 심으면 다 된다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아픈 사람들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아서 참 힘들어합니다.
평생을 아픈 자녀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입니다.

밭에서 일하는데 딸이 얼마 전 치른 청소년 상담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학기동안 집에 있으면서 시험공부를 한다고 하며 도서관도 왔다갔다 다녔지만 저는 사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공부가 전혀 안된다고 짜증내고 울고불고 하는걸 들어주는 것도 힘들어서 시험을 안쳐도 좋으니 제발 좀 마음 편하게 살라고 하며 달래주곤 했습니다.

알바조차도 힘들어서 못하는 딸인지라 취직을 위해 시험에 붙게 해달라는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7과목이나 되는 필기시험에 붙었다는 겁니다.
이건 진짜 하나님이 해주신 거다 생각하니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자기 인생에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고 하나님은 자기 기도는 전혀 안 들어 주신다며 십 몇 년 동안 울어댄 연약한 딸을 불쌍히 여겨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목이 멘 소리로 말하자 딸은 지금까지 엄마 속을 썩여서 울게 한 일은 많지만 감격해서 울게 한 건 처음인 것 같다며 잉잉 울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시험이지만 긴긴 시간 열등감과 우울증, 강박증으로 한없이 무기력하고 힘든 나날을 보낸 딸에게는 처음으로 파란 하늘 한 조각이 보이는 사건인겁니다.

물론 완전 합격이 아니라 탈락률이 높다는 면접시험을 주일날 치를 예정이어서 아이는 또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딸은 어느 대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인 방과 후 청소년 상담사 일을 지원해서 집안 형편이 안 좋은 아이를 찾아가 상담과 공부지도를 해줍니다. 수고비는 차비 정도만 받습니다.
그렇다고 딸의 병이 나은 건 아닙니다. 여전히 약도 먹고 상담도 받고 마음이 힘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한 자의 한발자국을 떼게 하신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려놓을 수밖에 없어서 딸을 주님께 내려놓고 힘든 지체들과 함께 걸어가니 이렇게 되는 것도 보여주십니다.

분열증,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지체들과 깊은 병에 빠져있는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체들은 오늘도 끝이 안 보이는 밭에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이 지체들과 함께 앉아서 말씀의 모종을 심는 것이 저의 할 일입니다. 손가락만한 크기 이상으로는 더 자라지 않는 모종이라 해도 하나님이 키우시길 간절히 기대하며 그저 날마다 심는 것이 저희의 할 일입니다.

*출처:우리들교회 자유나눔 home.woor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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