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6일 화요일

외도하는 남자와 외도하게 만든 여자-첫번째 글--

핏덩이 사랑을 듣고...

지난 주일 설교에서 들었던,"핏덩어리 사랑"은 , 지방 근무로 떨어져 지내다가 아주 헤어져 버리게 된 ,나의  남편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매일  만나는 것도 부족해서 수십통의 연애편지를 하고, 절대 헤어지지말자고 다짐하며 결혼을  했어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사람사이에  헤어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쉽게 뜨거워지는 사람은  또 그만큼 쉽게 떠날 수도 있는, 일종의  기질의 차이도 한 몫을 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아예 어디서 사는지 행방도 묘연해서 이혼도 할 수가 없는, 그와의 35년간의 결혼 생활이 끝난지도,  올해가 벌써 육년째로 접어든다.   "남편이 성공하길 바란다면,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보조역할을 철저히 해야 한다" 고  나는 늘 생각 해 왔다.  집안 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아내들을 오히려 이상하게 보며,  집에서  걱정이 없어야 자신의 일에 충실 할 수 있다고 믿고,  시집 식구들과도 남편보다 더 가깝게 지내며,  그의 마음이 편하도록 나는 지나칠 정도로 배려를 하며
살아왔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지방에 내려간 후 다른여자와 불의 한 관계에 빠져버렸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었다.
맨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상담가인, 미국에 있는  막내동생한테 의논을 했는데, 내가 호흡이 곤란한 것을 알고 즉시  샌프란시스코대학 병원에 있는 정신과의사인 나의 큰 아들에게 도움을 청해 버렸다.  가족 뿐 아니라, 나보다 더 놀란 사람들은, 시댁을 중심으로 내가  언제나 남편 중심으로 살아 온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 해 보면 가정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상호간에 전혀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 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와중에 두 아들의 결혼식과 늦둥이 딸의 대학 입시를  혼자서 눈물로 치루어야 했다.  남편은 두 결혼식에만 잠간 다녀 갔을 뿐이었다.  늘 웃고 다녔던 내가, 결혼식 사진에는 너무나 어색하게 나온 것도, 실상은   다 그 이유때문이었다.

그 뼈 아픈 고난의 여정 에서,  나는 마침내  "영혼 목욕탕"이라고 불리는 "우리들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피해자"라는 시각에서 부터 잘못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인이 없이 결과가 있을 수 없듯, 외도하는 남편과 그렇게 만든 여자 사이에서  피해자나 가해자가 따로 있을 수가 없음도, 나는 차츰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의 붕괴는 가족 모두를 한꺼번에 피해자로 만드는 일이다. 가족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다.  아무리 부족해도, 병들어도,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공동체 인 것이다.  

지금 생각 하면, 남자의 본질도 제대로 알지 못한채 결혼을 했기에, 그의 외도사실을 알았을 때 내 가정도 아예 끝난 것으로 믿어 버렸던 나의 어리석음,  또한 가정이 와해 되게 한,  큰 원인이였던 것 같다.   남자들은 다양한 밥 반찬을 즐기 듯이 바람을 피우고도 멀쩡하게 제자리로 돌아 올수 있는  이상야릇한 동물인 것을,  미리 알고만 있었어도 충격은 훨씬 덜했을지 모른다.. 늦둥이 딸의 입시가 코앞에 닥쳐서 함께 지방에 내려가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고통은 더 작아 보이는 법이오"라는 말을 끝으로,  속절없이 떠나 버린 남편에게,  나는 그 이유를 물어 볼 틈도 얻지 못한채 지금까지 살아 왔다.  어쨌던   모든것은,  우상처럼 가정을 떠 받들고, 그것만을 자랑으로 삼아 온 나의 이 생의 정욕과,  영혼의 중요성을 간과한채, " 가족신화"만 믿고  비굴 해질 만큼 이기적이였던, 내 삶의 결론이였다. 

딸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한  작년에서야,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외부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활동을 시작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40여년의 삶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아 온 것들이 얼마나, 얼마나,  많았던지를, 바로  옆에 두고도 모른 채 지내 온 이 강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 세상에 아직도 배울게 얼마나 많은지를,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지를....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나의 형편에 오히려 좋은 점만을 선택하며,  행복한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알차게 살아  오고 있었다.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40여년이나 자유를 그리워 할 줄도 모른채 살아 온 내가,  예전의 명랑한 기질을 다시 찾게 된것도 불과 일년 이내의 일이 였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남편을 용서 함으로써 내 쪽으로 넘어 온 공을 이미 그의 쪽으로 보냈다고 생각 했고, 어떤 이유이건 그가 묵묵 부답인것은 그와 하나님과의 문제이지 더이상 내가 관여 할 바가 아니라고 여기며 살았다.  교회에서 힘겹게 양육훈련을 받은 지난 석달 동안에도  그 문제는 가끔씩  표면으로 기어 올라 왔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포기 할줄 아는게 오히려 지혜로운 일"이라 생각하며  애써  눌러 버렸다.   남편도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에 익숙 해 져 있을 것이고,  나도 이젠 자유롭게 사는 기쁨을 누리고 있었으니 서로 윈윈전략을 쓰고 있는 셈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주일 설교에서 소개한 그 "핏덩어리 사랑" 이,  내 마음에  회오리 바람을 다시 일으켰다.
  한참 재밋게 잘 놀고 있는 내게, 그 핏덩이 사랑이 물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가.
새로 태어 난 손주가 두살이 넘도록 한번도  만나 보지도 못한채 
 가족과 완전히 단절되어 지내는 남편의 고통을 나는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이혼을 참고 있는 것으로만  잘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의문은,  나를 위해 찢기고, 온갖 수치 당하시고, 돌아 가신  주님을,  나는 과연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 사랑에 대한 답은,   내가 이세상에 살아 있는동안,  오직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를 통해서만  갚을 수가 있는 것이아닌가?. 

 지난 주일,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들으며 , 나는 화장이 다 지워지도록 울었다.
예수님을 믿은 지 30년이 지났어도, 아무리 내가 성경을 많이 읽고, 또 끊임없이 훌륭한  설교를 듣고 다녔어도,  내가 변화 받는 정도는,  다만 내가 느끼는 고난의 깊이에 비례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살아 남기 위해서 끊임 없이 더 나은 것, 긍정적인 생각들만을 선택해서 지내 온 결과, 오히려 고통 속에 머물고 있을 여유가 없어져서,   영적인  성숙이  더디 오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한가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 가정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두고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서,     앞으로 겪게 되는 모든 과정들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 하나님이 나를  언제나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 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였고,  그토록 귀하고 엄청난 재산을, 그냥 묻어 둔채 이 삶을 마친다는 것은, "나를 위해 주신 주님의 핏덩이 사랑" 에  너무나도 죄송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에 대해 만분지 일이라도 갚은 수 있는 길은,  오직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은 은혜를 대신 전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마치 어린애처럼 궁금 했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나를 구 해 내실까?"하고. 
 이 삭막한 광야 길에서 불기둥처럼 나를 인도 해 내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영적 여정의 길을,  떠난다.
 *출처: 우리들교회 자유나눔 home.woor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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